‘꿈이면 좋겠다’ 연신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서울에 도착했지만, 병원에서 마주한 아들은 굳게 닫힌 눈을 뜰 줄 몰랐다.

부모 고생 안 시키고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던 효자 아들은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부모에게 새집을 사준 지 2개월도 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지난 30일 정오께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아들이 사망했다는 말을 듣고 전화금융사기인 줄로만 알았다.

‘꿈이면 좋겠다’ 연신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서울에 도착했지만, 병원에서 마주한 아들은 굳게 닫힌 눈을 뜰 줄 몰랐다.

마지막으로 아들을 본 건 지난 추석, 아들이 선물한 아파트에 입주한 지 2∼3일째 되던 날이었다.

👉 “뒤에서는 ‘야 밀어. 우리가 더 힘세. 내가 이겨’ 라는 말이 생생하게 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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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집이 좋네요. 이제 엄마도 고생 안 하시고 잘 사시겠어요”라며 아들은 뿌듯한 얼굴로 떠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쌍둥이 형이 백혈병으로 투병하면서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아들이 형에게 두 번의 골수이식을 해줬지만, 형은 먼저 세상을 떠났다. 병원비를 충당하느라 쌓인 빚더미에 나앉은 가족은 처참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형 대신 꼭 성공하겠다. 20년 후에는 우리 어머니 고생 안 시키겠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열심히 공부한 끝에 로스쿨에 진학했고, 서울로 취업한 지 11년 만에 낡은 주택에서 살던 부모에게 새 아파트를 선물했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 날 때 마다 꼭 전화해 안부를 묻고, 종종 서울로 가족을 초대해 서울 구경을 시켜줬던 듬직한 아들.

큰 키에 건강한 체격이었던 아들이 그곳에 쓰러졌다는 사실이 가족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어머니는 “이제 입주한 좋은 아파트 내 새끼는 살아보지도 못하고 그냥 저렇게 가버렸다”며

“공부밖에 모르는 가장 착한 아들이 이 모양 이 꼴이 됐으니 내가 어쩌겠냐. 같이 따라가고 싶은 마음뿐이다”고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사진 : 연합뉴스]

이어 “인력을 조금이라도 더 배치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냐”며 “현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탓에 발생한 인재”라고 울먹였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이태원 압사 참사 사망자는 154명으로 집계됐다.

부상자는 중상자 33명, 경상자 116명으로 총 14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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