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는 어린시절 굉장히 어려운 환경에서 야구를 접했고 그는 형과 함께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조선의 4번 타자’ ‘롯데 자이언츠의 영원한 10번’이 정든 사직 그라운드와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이대호(40·롯데)가 뜨거운 박수와 눈물 속에서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날은 2001년 프로에 데뷔한 이대호의 현역 마지막 경기였다.

이대호는 올 시즌이 끝나면 은퇴를 하겠다고 한 바 있다. 정규시즌을 8위로 마쳐 ‘가을 야구’ 진출에 실패한 롯데는 이날이 시즌 마지막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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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의 경력

이대호는 2001년 롯데에 입단해 2012~2016년(일본 4년, 미국 1년) 해외에서 활약한 것을 제외하면 롯데에서만 뛴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안방에서의 LG전이 끝난 뒤 이대호의 은퇴식과 영구결번식 행사를 통해 그와 그의 등번호 10번은 롯데의 역사가 됐다.

이날 이대호의 마지막 순간을 보러 사직구장엔 만원 관중(공식 2만2990명)이 몰렸다.

영구결번식에 앞서 열린 은퇴식에선 이대호와 동고동락했던 동료들과 감독 등이 전광판을 통해 이대호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건넸다.

이어 이대호의 아내 신혜정씨, 딸 예서, 아들 예승군이 한마디를 더했다. 이대호는 가족들의 영상을 보면서 울먹거렸다.

꽃다발을 건네는 아내를 끌어안고 두 사람은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이대호는 이후 고별사를 읽었다.

“사실 오늘이 세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이었다”는 말로 운을 뗀 이대호는 “기일에 은퇴식을 한다는 게 감회가 새롭고 슬프다”고 말했다.

팬들을 향해서는 “더그아웃에서 보는 사직구장 관중석만큼 멋진 풍경은 없고, 타석에서 들리는 부산 팬의 응원만큼 든든한 소리도 없을 것이다.

그 함성을 들은 이대호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가족에겐 “남들처럼 여름방학 때 해운대에 못 데려가는 못난 아빠를 위해 늘 웃는 얼굴 보여준 예서와 예승, ‘독박 육아’라는 말도 모자란 아내에게 고맙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sc name=”half”]그리고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어린 이대호를 길러준 할머니를 떠올리며[sc name=”half2″]

“하늘에 계신 할머니, 늘 걱정하시던 손자 대호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박수받으며 떠납니다. 오늘 가장 생각나고 보고 싶다”며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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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의 사연

📌 이대호는 어린시절 굉장히 어려운 환경에서 야구를 접했고 그는 형과 함께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그가 세살때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재가했다. 할머니는 시장좌판에서 김치와 된장을 팔며 형제를 어렵게 키웠으며,

[sc name=”half”]이대호가 야구와 인연을 맺은건 지금도 절친한 추신수의 손에 이끌려서 야구와 연을 맺기 시작하였다[sc name=”half2″]

하지만 어려운 형편과 넉넉하지 못한 지원에 자신을 스카웃한 중학교 감독의 집에서 2년반동안 더부살이하며 야구경력을 이어갔고 결국 고교시절에는 촉망받는 투수로 발돋음 하였다

이후 어깨 부상으로 인해 타자로 전향했고, 엄청난 노력끝에 지금의 이대호가 있게 된 사연이 있다

은퇴식 행사에 영구결번식도 같이 진행됐다.

이대호는 2005년부터 롯데에서 뛰는 내내 10번을 사용했다. 이대호의 10번은 롯데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영구결번인 고(故) 최동원의 11번 옆에 자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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